여느 다를 것 없는 2019년이었던 것 같아요.
마을 활동도 하고 느린걸음 활동도 하고 세상은 점점 중국의 우한으로 부터 발생된 이야기에 곤두설때 쯤 제가 사는 강남에서는 사회적 경제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.
잘사는 동네지만 속까지는 철저히 가벼운…사회적 가치는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울림처럼…그럼에도 마을 활동에 열심히 코박고 미친듯이 하고 있었죠.

​2019년 사회적 기업강의를 듣고 몇십년을 끌고왔던 느린걸음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.
아무것도 어떤 모양도 만들지 못했던 그 느린걸음을 말이죠..그때 아마 사만명의 회원이었던 것 같아요.

​누가 알려주는 길 없었고 이걸 어떻게 끌고 가야하는 찰나에 들었던 사회적 경제는 그 가치를 찾아가게 만든 끌림 같은 거 같았어요.
다른 마을 활동과 내가 하고 있는 느린걸음에서 더 가치를 찾아야 하는 것들의 우선 순위를 잡아나가게 했던 것 같아요.
과연 나는 어떤 가치를 찾아낼 수 있을까?하는 고민들이 더 많았죠.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것 말고는 없었으니까요.

​어떤 가치를 가지고 모였던 것이 아니잖아요.
아이의 재활정보를 찾기 위해 움직였었고 기록했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왔더라구요.
단지 그것밖에는 그 다음이 없더라구요. 치열하게 그 다음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.
그때 카페로 책 리뷰 요청이 들어오고 제목이 아마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이었던 것 같아요.

간병살인….

​그랬죠. 책장을 넘기는 순간 마주했던 그 현실.
노인이 노인을 돌보는, 장애보호자가 장애인을 돌보는 또는 긴 간병에 보호자가 큰 질병에 걸리는
결국 피해자와 가해자가 같은 가족안에서 발생하는 내가 어쩔 수 없다고 느끼고 같이 데리고 가야지 하고 끝내버리는 그 순간들을 보면서
그때 아이가 다니고 있던 지역센터에서도 엄마가 뛰어내린 사건이 있었어요. 긴 시간을 노력한 그 엄마의 시간들은 모두 흩어져 버렸죠.

남겨진 아이. 떠나간 엄마

아이는 엄마가 없는 걸 느꼈나봐요. “그렇게 난리더만, 엄마 있을때는 말 안듣더니, 재도 아는가봐. ” 엄마가 없으니 고분고분해지더라는 주위의 이야기가 더없이 슬프게 들렸어요.
살아가면서 주변에서 참 많은 말들을 들어요.
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슬픈 말은 간병살인이었어요.
특히나 명절에 더 많이 일어난다는 그 말에…. 나를 향해 다가오는 그 아이를 그 가족을 …..

​그래서 였던 것 같아요.

느린걸음의 처음은 시간제돌봄으로 계획을 했었죠.
보호자들을 쉬게 해주고 싶었고 그 순간을 덜어주고 싶었어요. 그건 제가 보호자였기에 더 그런지도 모르겠어요.
사업을 준비하고 계획서를 쓰고 하면서 참 많은 순간들을 겪었던 것 같아요. 장애아이의 돌봄은 그냥 육아로 보시더라구요. 아마 많은 사람이 있으시겠지만 그랬어요.

“내가 아는 돌봄은 우리 엄마가 할머니를 돌보는게 간병인데, 장애 아이를 돌보는 게 왜 간병이냐고?”

“장애아이들은 모두 질병코드를 가지고 살아갑니다. 엄마가 할머니를 돌보는 것처럼 우린 어린 치매환자들과 평생을 같이 살아간다고 보시면 되요.
그러면 우리는 평생 간병이죠. 치매는 국가책임인데 장애는 부모 책임이라서요. 소득 수준에 따라 아플 수 없는데 소득 수준에 따라 많은 것들이 정해지죠.
장애라고 부모가 더 받는 것 없습니다. 그래서 부모들을 위해 만들어 나가는 겁니다.”

시간제 돌봄을 준비하고 선생님을 모으고 가정을 모으고 그때 코로나가 시작이 되었어요. 멈췄죠. 대면이….

​느린걸음은 다시 원점에서 사회적 기업가 과정을 고민하기 시작했어요.
여러분들에게 알려드리고 싶었어요. 느린걸음의 이야기들을….
비대면재활교육이라는 그 아이템으로 가기까지 수 많은 고민들을 하게 됩니다.